삼상17:45-47 "다윗"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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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구약인물 “여호수아"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여호수아 “광야에서 깊게 깊게 뿌리내린 신앙"으로 여리고를 무너뜨린 역사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바오밥 나무처럼 깊게 심기워진 믿음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인물 “다윗-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보며 주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무엘서는 ‘사사 시대의 절망을 뒤집는 새 왕이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쓰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불신앙 이후에 하나님이 세우신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왕의 모형입니다. 모 형이라고 한 것은 이 다윗 왕이 이후에 나타날 진짜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7장 은 그 왕으로 세워질 다윗이 가진 중요한 특징들을 보여 주는 에 피소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 기입니다.
엄청난 신장의 골리앗은 강력한 갑옷과 무기를 들고 나와 이 스라엘 군대를 조롱하며 싸우자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스라엘 은 골리앗과 싸우기를 두려워했습니다. 40일 동안이나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와 하나님을 욕했지만 아무도 나가 싸우려 하지 않 았습니다. 그때 형들의 안위가 궁금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 에 사식을 가지고 찾아간 15세 다윗이 그 소리를 듣고 골리앗과의 전투에 출전하여 이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여서 저 역시 이 말씀을 여러 번 전했습니다. 먼저 골리앗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골리앗은 키가 6규빗 1뼘입니다. 규빗은 45센티미터고, 뼘은 13센티미터입니다. 환산하면 골리앗의 키는 283 센티미터입니다. 현재 사진이 남아 있는 현대의 거인으로 가장 큰 키를 가진 이는 로버트 워드로우로드로 268센티미터입니다
그는 오천 세겔의 놋으로 만든 갑옷을 입었는데 그 것은 57킬로그램에 해당하고, 창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 창의 끝,철로 된 날의 무게만 7킬로그램입니다. 게다가 등에는 던질 수 있는 놋으로 된 단창을 여러 개 매고 있었다고 합니다. 얼추 계산해도 100킬로그램 이상의 무장으로 온몸을 휘감고 나타난 사람이 골리앗입니다. 그 앞에 방패를 드는 사람이 따로 그 거 대 한 골리앗의 몸을 가려 주는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성경의 묘사 를 정리하면 골리앗은 난공불락의 성과 같습니다. 누구도 이 성 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갈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인간 병기를 향해 한 소년이 달려갑니다. 그 는 목동의 옷을 입고 있고 손에는 양몰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흔하디 흔한 물매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해 보이는 소년 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능력으로’ 그 거대한 전사를 단 한 번의 물매질로 쳐 죽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결론 맺었습니 다. 세상이 골리앗처럼 강해 보이고, 결코 항거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해 보인다 할지라도,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초라해 보이고 힘이 없어 보여서 도저히 이 세상을 하나님의 백성이 이길 수 없 을 것 같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전진 하면 성도는 승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 함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용사’가 되자고 말입니다.
17장의 모든 스토리는 16장 7절 떄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삼으신 이유는 바로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
거룩한 분노
사무엘상 17:29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이 말은 “내가 이렇게 나서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 이유가 무엇인가요. 본문을 깊게 보면 동일한 단어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7: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사무엘상 17:27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사무엘상 17:30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골리앗이 했던 어떤 말, 그 말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 전투에 뛰어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 전투에 뛰어들게 한 것은 골리앗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인가요?
사무엘상 17:8–9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전쟁이 시작한 지 40일이 되었습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 계속 울려퍼졌던 소리는...바로 이 소리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반복되는 비웃음과 조롱이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움으로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전투의 결과를 이미 잘 알고 있습 니다. 다윗은 단 한 번의 물매질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그 태서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 긴장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이 전투에 나아갈 때의 상황은 그런 게 아닙니다. 다윗은 두 렵습니다. 다윗은 싸움의 1法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릅니다. 다 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가면서 개울가의 돌맹이 한 개를 든 게 아 니라 다섯 개를 찾아 들었습니다. 왜일까요? 한방에 골리앗을 맞 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이긴다고 확언하지만 실상 다윗의 마음속 은 황산벌 전쟁에서 신라의 화랑 관창이 그러했듯 골리앗에게 장 렬하게 죽음으로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를 올리리라 생각했을 수 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자신의 생명으로 말하고 싶 은 메시지가 있었고 그래서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나아간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을 사는 여러분, 이 땅에서 교회와 성도의 위상은 지금 어떠함니까? 청년 여러분, 세 상이 교회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비아냥거리는 것 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를 향해 수 없 이 많은 세상의 비난과 모욕적인 말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들 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대학들은 반 기독교적 정서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을 말하는 순간 갑자기 대단히 개화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기 도 합니다. 청년 여러분,여러분은 그런 캠퍼스 안에서 또 그런 회사 속에서 어떻게 하십니까?
이렇게 비참해진 교회와 기독교의 위상 때문에 여러분은 진심 으로 아파하십니까?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분노가 올라읍니까? 아 니면,여기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처럼 누군가가 이 문제를 해결 해 주기를 바라며 안전한 곳에서 구경하듯 바라보며 안타까워하 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앞에 나서지도 않은 채 어물쩡거리 며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닌지요?
사랑하는 여러분,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참 많이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랑하는 이’가 누군가에 의해 뺨 맞고 짓밟히고 있습니 다. 그들이 ‘내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침을 밸고, 비속어를 사용 해서 모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와중에 어떻게 가만히 서 있 을 수 있습니까?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진짜라면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그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고 싶은 것 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분노’가 되어 다윗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 다윗의 중심에 있는 당신을 향한 불타는 사 랑을 본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 안에 이 다 윗의 중심을 태우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 사랑 에서 나오는 거룩한 분노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3. 다윗의 중심⑵ : 세상과 다른 계산, 골리앗과 사울 그리고 다윗(31~33)
청년 여러분, 세상은 강해 보입니다. 세상은 아마 계속해서 자 신이 강하다고 할 것이며,여러분이 그 세상의 말을 듣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망하게 될 거라고 위협할 것입니다. 그러 나 세상의 위협 앞에서 여러분은 세상의 중심을 똑바로 봐야 합 니다. 세상이 여러분 앞에서 그렇게 센 척하는 이유가 뭡니까? 우 리 성도가 성도로 살지 못하게 계속해서 공격하는 이유가 뭡니 까? 우리 성도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이 땅에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앞뒤 안 보고 살아가는데, 그런 세상 앞에서, “하늘이 있고 영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 의 존재에 큰 위협이 됨니다. 세상과는 달리, 자기 욕망의 가치관 전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 게 그렇게 윽박지르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감추는 것입니다. 온 통 자신을 무시무시하게 무장하고 있지만,실상 방패 뒤에 숨어 서 슬금슬금 걸어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중심을 보신 것처럼 다윗도 세상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심한 중심을 봤고,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거인 골리앗 중심의 두려움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 전체를 주관하고 계 시며, 이 전투를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엘샤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보는 시선으 로 지금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청년의 때에 이 ‘다윗의 시선’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시선 을 가지고 우리 삶에 놓여 있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주님이 바 라시는 기준에 의거해서 선택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청년의 때,당신의 삶 전체를 이끌어 가시며 세상을 주관하시 는 하나님의 관점을 발견한 인생은 결코 허망하게 쓰러지지 않 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청년의 시기에 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의 사람의 선명한 기준’을 배우고 익히고 세길 수 있기를 축원합 니 다.
4. 다윗의 중심⑶ : 두 가지 근거에 의한승리의 확신(32~37)
다윗에게는 이 전투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확 신이 다윗으로 하여금 전투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성경은 두 가 지로 다윗의 중심에 있던 확신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 나는 작은 믿음의 승리에 대한 경험입니다.
사무엘상 17:34–36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두 번째, 승리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용기를 내어 싸움에 나가는 소년 다윗에게 무 슨 지식이 있었다는 것일까요? 35절과 37절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사무엘상 17: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사무엘상 17: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의 어떠함이 아닙니다. 다윗의 물매 던지는 실력이 아닙 니다. 빠른 다리가 아닙니다. 이미 많이 싸워 본 노하우도 아닙니 다. 이스라엘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 대한 바론 지식에서 나온 온 전한 신뢰의 결과인 것입니다. 다윗의 확신의 비결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고한 지식에 근거한 믿음이었습니다.
청년 여러분,하나님을 아십시오.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기를 소 망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어 떤 일을 행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말씀의 계시를 통해 여러분의 지성과 삶의 세세한 부분들을 만지신 하나님을 경험을 통해 아 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어떻게 삼위일체적 으로 역사하고 일하시는지 전인적으로 알아 가십시오.
그 온전한 지식에서 나오는 신뢰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원하시는 자리에 그분의 원하는 방식으로 서십시오. 주께서 여러 분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5. 여호와의 전투,그 결과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무엘상 17:46–47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할렐루야~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다윗의 전투 무기는 여호와의 이름이었고 그 이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 주기 위한 전투가 바로 이 다윗과 골리 앗의 전투입 니다. 완벽하게 세상의 무기들로 자신 을 둘러싼 한 인간과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장한 한 사람이 싸우는 것입니다. 물론 칼 과 창과 단창으로 다가오는 적을 향해,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손 을 기대하며 물맷돌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 다. 다윗도 사울 왕이 사용해 보라고 한 칼과 창과 단창을 가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의 칼과 창과 갑옷을 입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 매력적인 기회를 포기합니다. 왜입니까? 그는 지금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 상을 이기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 다윗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은 이 엘라 골짜기의 전투를 통해서 새로운 왕으로 기름 부은 다 윗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 이스라엘로 보게 하신 것 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주머니 속에 있던 물매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머리 위로 수 바퀴 돌린 후에 한쪽 끈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물매 안에서 나 온 돌맹이가 빠른 속도로 골리앗을 향해 날아갔고 골리 앗은 피하 지도 막지도 못했습니다. 다윗의 주먹만한 돌이었습니다. 이 돌 은 시속 1的킬로미터로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 한가운데 깊이 박 힐 만큼 강력했습니다. 골리앗이 단 한 번의 물맷돌에 맞아 죽어 버린 것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다윗이 준비한 나머지 돌 네 개는 필요도 없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기 이전의 내용은 참 많이 다 투면서 실상 어떻게 싸웠는지는 단 두 줄뿐입니다. 성경은 다윗 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51절이나 되는 분량의 글을 쓰는데 막상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는 그 장면에 대한 기록은 두 절뿐입니다.
사무엘상 17:48–49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그런데 이게 뭡니까? 47절이나 되는 서론을 전개해 놓고는 막 상 싸움은 두절이라뇨! 너무나 허무하게도 골리 앗이 창 한 번,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다니요. 다윗도 골리앗이 너무 쉽게 쓰러져 서 당황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생명을 끊을 칼 한 자루도 준 비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이 쓰러지니까 칼이 없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의식 잃은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친 것입니 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도 이렇게 싶게 이기리라 생각하지 못 할 만큼 전투가 쉽게 끝나 버렸습니다. 왜입니까? 다윗과 골리앗 이 싸운 게 아니라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블레 셋 사람 하나를 치셨기 때문입니 다.
6. 성도로 산다는 것은
여러분 앞에 넘지 못할 것 같은 산이 있습니까? 건너지 못할 것 갈은 바다가 있습니까? 이길 수 없는 거인 족들은 어떻습니 까?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크고 높고 강해 보이는 그것들이, 우리 눈에는 불가능으로 보이는 그것들 이 과연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에도 그리 보일 것 같냐는 것입니 다. 크고 높은 강한 여리고 성을 하나님이 어떻게 무너뜨리셨는 지 기억해야 합니다. 7일간 열세 번 돌고 소리를 질렀을 뿐입니 다. 여러분,출애굽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를 어떻게 건녔습니까? 수백 개의 멧목으로 도하 작전을 폈습니까? 아닙니다. 하룻밤 사이에 하나님 이 홍해를 가르고 마론 땅을 내어 통과하게 하셨습니 다. 오늘 본문에서 이 골리앗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첫 번째 던진 돌이 날아갈 때, 하나님이 그 돌을 “후” 하고 불으셨습니다. 그러 고는 절묘하게 투구의 유일한 빈틈으로 정확하게 돌을 유도하셨 습니다. 그 돌맹이 하나로 인해 40일 동안이나 하나님을 모욕한 거대한 골리앗이 창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채 단창 하나 던져 보지 못한 채 쓰러져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 손의 능력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 기를 기대합니다. 그 손의 능력으로 여러분 앞의 거인들이 굴복 당하는 것을 날마다의 삶 가운데서 경험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람 니다. 이 공동체 앞에 놓여 있는 여러 거인들을 향해서도 동일한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가 이 시대 이 교회 공동체의 한계와 아픔과 장애물들을 무너뜨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 고 작은 믿음을 크게 훈련하여, 주님의 기적을 경험 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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